
사각사각, 연필을 움직이는 소리만 교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조금 뒤 사각거리는 소리가 끊어지더니 팔락, 하고 종잇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따사로운 햇볕이 프리드의 갈색 머리카락을 더욱 찬란하게 빛나게 만든다. 프리드의 에메랄드 눈동자는 여전히 하얀 종이와 까만 글자에 향해있다. 창문 밖으론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대체로 프리드가 있는 공간은 공허함이 가득하다.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와 연필을 움직이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프리드의 귓가에 들려온다. 한참동안 책을 들여다보던 프리드가 눈살을 찌푸리고선 눈을 비빈다. 입이 크게 벌어지자 손으로 급히 자신의 입을 가려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기지개를 편다. 허리를 뒤로 젖히자 폭신한 무언가가 프리드의 머리에 닿는다.
“…어?”
“여기 있을 줄 알았어, 프리드.”
프리드의 눈동자 속에 자신을 향해 빙그레 미소 짓는 팬텀의 모습이 비쳤다. 프리드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팬텀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허리를 숙여 똑바로 앉은 채 팬텀을 향해 외쳤다.
“팬텀? 너 왜 여기 있는거야?”
“그거야, 네가 연락도 안 받으니까 찾으러 왔지.”
팬텀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프리드는 팬텀의 모습에 자신의 옆자리 책상 위에 고이 올려져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어 화면을 킨다. 그러자 ‘팬텀’ 이라는 이름 옆에 5라는 숫자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며 팬텀에게서 전화가 5번이나 왔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프리드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미안해, 전화가 이렇게 많이 와있을 줄은 몰랐네.”라고 말했다. 팬텀은 프리드의 미소에 짧은 숨을 내쉬며 프리드의 옆자리에 앉는다. “괜찮아, 넌 항상 주말이 되면 학교에 있으니까 찾기 쉬웠어.” 프리드는 팬텀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이 그렇게 학교에 자주 오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학생회장님께선 항상 책을 손에 놓지 않으시더라?”
턱을 괸 채 자신을 향해 한 마디를 툭 내뱉는 팬텀의 모습에 프리드는 시선을 옮겨 자신의 교과서와 공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팬텀은 가끔 프리드의 지위를 호칭으로 대신 부르기도 한다. 능청맞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팬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다. 프리드가 뻗은 손바닥 위로 팬텀의 손이 겹쳐진다. “공부해야지. 그게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이니까.” 프리드의 부드러운 음색이 팬텀의 귀를 두드린다. 팬텀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프리드의 입술 위에 짧은 입맞춤을 하고선 대답한다. “가끔 아이처럼 놀아도 되잖아. 우린 한참 놀 나이인걸.” 프리드가 비어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풋, 하고 얕은 웃음을 터트린다. “19살은 놀 나이가 지났는걸.” 비어있는 프리드의 옆자리에 팬텀이 털썩, 앉고선 프리드의 말이 틀렸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잘 들어봐, 프리드.
우린 지금 19살이잖아.
19살이면 아직 10대야, 10대는 청소년이잖아?
청소년은 아직 성장기야.
그럼 우린 아직 성장기고 놀 나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우린 아직 놀 나이야.”
팬텀이 자신의 말이 옳다는 듯 프리드의 손을 꼭 잡은 채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심히 움직이는 팬텀의 모습에 프리드는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팬텀의 말에 하나하나씩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팬텀이 말에 전부 옳다는 대답에 팬텀이 자신의 몸을 프리드의 쪽으로 기울이며 입을 연다.
“회장님, 진짜 인정한 거야?
그냥 그렇다고 쳐준 것 같은데….”
“아니야, 네 말이 맞아.
우린 놀 나이야.“
팬텀의 툴툴거리는 어투에 프리드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팬텀이 프리드의 어깨에 기대며 프리드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어 손깍지를 끼운다. 더 이상 공부는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프리드는 스스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교과서를 덮어버린다. “이제 뭐할까, 팬텀?” 조곤조곤, 부드러운 말투로 팬텀에게 물음을 던지는 프리드의 말에 팬텀이 조용히 눈을 감고서 대답한다.
“…잠시 이대로 있자.”
열려있는 창문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