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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이

 

*뱀파이어X사제 AU

 

 

"Trick or Treat!"

 

갑자기 튀어나온 손에 어안이 벙벙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검은 형체가 웃고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 거냐며 자신을 비웃는 게 분명했다. 미친놈아, 지금 새벽 4시라고!

 

안 그래도 가뜩이나 수면 부족이라서 힘든데, 새벽에 쳐들어와서 하는 말이 그딴 것밖에 없어?! 애초에 여기는 뱀파이어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라며 박박 악을 쓰는 모습에 팬텀이 꼬리를 내렸다. 한참 화를 내다 퍼뜩 정신을 차린 뒤 옷을 차려입는 행동이 제 눈엔 마냥 귀여워 보였다. 단추가 많아서 꼬물꼬물 옷에 들어가는 게 마치 애벌레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애벌레.

 

"애벌레 닮았다는 소리 들은 적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됐어. 남은 단추를 채우는 손이 너무 깜찍해보여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런 귀여운 건 나한테만 보여줬으면 좋겠네. 다른 놈들이 이런 거 보면 똑같이 반할지도 몰라.

 

"너 또 이상한 생각했지?!“

 

물론 멍한 눈으로 실실 웃는 것에 돌아온 것은 잔소리였지만. 프리드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전지적 그의 시점에서 보면 프리드는 한참 어린 애기였다. 그러니까 맨날 하는 게 뒤나 졸졸 따라다니고 귀여워하는 것 외엔 남는 게 없었다. 프리드는 이 부분에 대해 정말 억울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그릇을 깨트리질 않나, 매일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하질 않나. 보통 사람이 그러면 질색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직까지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무 제 취향으로 생겼다. 객관적으로 봐도 팬텀은 동화 속에 나오는 백마 탄 왕자님처럼 아주 근사하게 생겼다. 당장 길거리에 내보내도 그의 얼굴만 봐도 사람이 줄줄 꼬일 거란 말이다. 근데 왜 나를 쫓아다니지? 이 상황은 프리드가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혹시, 나를 좋아하나?

 

"어떻게 사제가 되서 사탕 하나가 없을 수 있어? 정말 너무하다."

"어제 애들한테 줘서 이젠 없다고."

"내 건 하나도 안 남겨주고.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했지?“

 

그런 사람인줄 몰랐네. 귓가에 떨어지는 음정이 소름끼치게 부드러웠다. 은근슬쩍 뒤에서 끌어안는 행동에 뭐하는 거냐며 째려봤지만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나야말로 그 말을 해야 되는데. 아니, 저게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랑 똑같이 행동하잖아! 근데 사람 마음은 다 흔들어놓고 뭐하는 거냐고.

 

"오늘 아프다고 안 가면 안 돼?"

"안 돼.“

 

단호한 투로 어깨를 밀어내자 순식간에 눈썹이 내려갔다. 저런 시무룩한 얼굴을 보면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그렇지만 오늘은 할 일도 많고. 어제 행사 차 마을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등 여러가지 행사를 해서 기록도 남겨둬야 하고. 밀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너 없으면 심심하단 말이야.”

 

흘리듯 스쳐지나간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심심풀이 땅콩이라 이거지? 갑자기 취급이 내려간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누가 놀아줄까 보냐.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문고리를 돌렸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화를 식히려는 듯 심호흡을 하며 걸어가는 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쟤랑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질문에 혼자 답하며 자긴 잘못한 게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그렇게 두고 온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다시 방에 가봤지만 그는 이미 떠난듯했다. 열려있는 창문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한 순간에 뻥 차인 듯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먹는둥 마는둥 하고 방에 돌아와 아침의 상황을 곱씹어봤다. 내가 화 낸 건 잘못한 게 맞겠지. 맞아. 밤에 오면 미안하다고 해야지. 하루 종일 사탕이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안 해서 결국 하나 가져왔다. 사탕이 엄청 먹고 싶었는데 아는 인간이 나밖에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손에 쥐여진 사탕을 보며 마음을 추스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무식하게 삽질 하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도 아닌 거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거기까지 도달하자 갑자기 머리에 열이 몰렸다. 아니, 그럼 나한테 했던 행동이 다 장난이었나? 맨날 찾아와서 꽃 주고 산책 나가고 그런 게 다 사심 없는 행동이었단 말야? 그럼 난 뭐가 되는 거지. 여태 이렇다 할 연애를 해보지 않은 그가 자신의 버릇을 알 리가 없었다. 진지하게 들어가면 바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땅 파기. 그게 지금 실현되고 있었다. 생각이 깊어지자 저절로 머리에 손이 올라갔다. 아, 팬텀이 뜯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것조차 그의 흔적이 묻어 있다는 의식에 하고 있던 생각이 더 가속화됐다. 불현듯 몇 달 전 밤에 했던 기도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쟤가 영원히 저만 좋아하게 해주세요. 그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서로 거리를 두고 호감을 쌓아가던 사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이런 사이가 되었다. 뭘 해도 귀엽다고 아빠 미소를 짓는데 연애 상대로 보기나 하는 걸까. 자괴감에 휩싸여 침대에 머리를 누였다. 처음엔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도통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마음만 답답했다. 뭐야. 이제까지 나만 혼자 설레고 나만 좋아한 거야? 그럼 처음부터 꼬시질 말든가! 결국 분노에 못 이겨 창문 밖으로 사탕을 집어던졌다. 눈앞에 자꾸 그의 얼굴이 스쳤다. 생글생글 웃는 게 꼭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아 얄미웠다. 지금은 보기 싫은데.

 

"이젠 꼴 보기도 싫다."

“나 보기 싫어?”

 

그런 거면 좀 상처인데. 갑자기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졌다. 이 색을 가지고, 이런 얼굴을 가진 건 팬텀밖에 없어서 더 열이 뻗쳤다. 내가 이 얼굴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아까 던져버린 사탕은 또 어떻게 잡아왔는지. 이럴 때마다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게 확 와 닿아서 기분이 묘했다. 아직 화도 안 풀렸는데 이런 느낌이 섞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눈을 꼭 감았다.

 

“정말 나 보기 싫어? 다시 갈까?”

 

보기 싫다는 말엔 고개를 끄덕였다가, 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 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아파, 하고 빼낸 손은 얼음장 같았다. 프리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으, 귀여워. 귀엽다는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하는 바람에 팬텀은 속으로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귀여운 걸 어떡해. 어느 새 얼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화 많이 났어?”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보라색 눈을 쳐다보려 해도 이미 잔뜩 긴장해버린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쳐다보면 반칙인데.

 

“아침엔 내가 미안해.”

“……….”

“사탕 먹고 화 풀어주면 안 될까?”

 

응? 한 번만. 애처롭게 저를 보는 눈빛에 괜히 마음이 시큰해져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사탕이나 줘. 아직 다 풀어진 건 아니었는지 퉁명한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그 순간, 팬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먹여줄게.”

막을 새도 없이 들어온 입술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거 꿈인가? 실화야? 곧 이어 입 속으로 사탕이 굴러들어왔다. 부드럽게 혀를 굴리며 사탕을 녹여내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생생해서 머리털이 쭈뼛 선 것처럼 느껴졌다. 입 안에 달달한 맛이 치열까지 녹일 것만 같았다. 프리드는 그의 목에 손을 감으며 생각했다.

 

팬텀이 영원히 저만 좋아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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