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잘 드는 칼이 필요하다며 여러 개의 칼을 모으던 너는 그렇게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하얀 욕조에도, 타일에도, 바닥에도 붉은색 피안화가 피어났다. 욕조에 고개를 괴고 잠들어버린 네 손을 잡았다. 잡은 손목에도 붉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욕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프리드의 얼굴을 마주한다. 너 이러려고 욕실 하얀색으로 도배한 거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흘끗 본 욕조 안은 맑은 빨강이었다.
욕실의 문을 열을 때마다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우리 집 욕실이 두 개여서 다행이야. 그렇지?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랜만의 쉬는 날이었다. 바닥에 딱 붙어버린 피가 꼭 압화 같았다. 베란다에 걸어두었던 걸레를 들고 와 바닥을 닦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데미안. 스르륵 흘러가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지만 역시나 너는 곤히 자고 있었다. 환청이구나. 흘러내린 소매를 다시 걷어 올렸다.
욕실의 문을 열 때마다 비린내와 함께 조금의 악취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욕실 곳곳에 피어있던 꽃들은 하나하나 잎을 잃어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춰버렸다. 흘끗 본 욕조 안은 검붉었다. 다녀올게. 욕조 밖으로 나온 손에 깍지를 한 번 끼고는 일어섰다. 프리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았지만, 내 착각이겠지.
다녀왔어. 돌아오는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형식적으로 내뱉는다. 금방이라도 프리드가 저 갈색 문을 열고 나와서 ‘다녀왔어?‘ 하며 인사를 건네어 줄 것 같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겉옷 또한 소파 위에,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뒤에서 잔소리가 들려와야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프리드의 방과 가까이 붙어있는 욕실로 시선을 돌려도 그대로였다.
네가 죽은 지 딱 44일 되는 날이었다.
